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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0-10 13:15 조회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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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삼환아르누보 소방관에 대리점 내준 벤츠 딜러사 '스타자동차'
정상 영업 포기하고 소방관에 '현장 지휘본부' 제공
도시락·김밥 등 1,000만원 상당 물품 무상 기부

9일 오전 울산 남구 달동 벤츠 딜러사 스타자동차 영업점에서 삼환아르누보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사진제공=스타자동차


유재진 메르세데스벤츠 공식 딜러사 스타자동차 회장.

[서울경제]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없고 한숨을 돌릴 장소도 없었는데 벤츠에서 선뜻 전시장을 내줘 큰 도움이 됐습니다.”

벤츠 딜러사 중 한 곳이 15시간40여분 만에 진압된 울산 삼환아르누보 건물화재 출동 소방관들에게 전시장을 내준 소식이 알려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해당 딜러사는 이날 정상 영업도 포기하고 소방관들에게 1,000만원가량의 식사까지 대접했다.파워볼실시간

9일 업계에 따르면 벤츠 딜러사인 스타자동차는 삼환아르누보 인근 5층 규모의 자사 전시장을 오전7시부터 소방관 등 인력 1,300여명에게 ‘현장 지휘본부’로 내줬다. 스타자동차가 전시장을 내주기 전까지 소방관들은 지난 8일 오후11시7분부터 8시간가량 길 위에서 틈틈이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이날 스타자동차가 대리점을 내준 배경에는 유재진(사진) 스타자동차 회장의 결단이 있었다. 전날 밤 화재 소식을 전해 들은 유 회장은 이날 오전7시 회사 임원진과 함께 현장을 방문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임직원을 다독여 “지역 주민이 화마(火魔)에 떨고 있고 소방관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도와야 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유 회장의 자기희생 정신을 익히 알고 있었던 임직원들도 의기투합했다. 화재 현장은 대로변 아파트였고 근처 골목은 주민들의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아파트 내 공터는 화재 잔해가 떨어져 지휘본부를 차릴 곳이 없었다. 이를 본 유 회장은 소방당국 측에 인근에 있는 자사 대리점을 ‘현장 지휘본부’로 써줄 것을 먼저 제안했다. 이를 위해 스타자동차는 이날 울산 대리점의 정상 영업을 포기했다. 고객과 지역사회를 위한 작은 위안이라며 몸을 낮췄다.

현장 소방관들은 “밤새 화장실도 못 가고 어려움이 많았는데 진심으로 고맙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스타자동차는 소방관들에게 휴식 장소는 물론 식사까지 제공했다. 스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도시락만 총 300인분을 준비했고 김밥 등 간식거리까지 1,000만원 상당의 물품을 긴급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이날 화재는 오후2시50분께 완전히 진압됐다. 출동 소방관들이 철수하자 스타자동차는 화재 현장에서 날아온 잔해를 치웠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공식 딜러사인 스타자동차는 유 회장이 메르세데스벤츠 사회공헌위원을 맡는 등 지역사회의 어려운 일에 앞장서고 있다. 매년 사랑의 헌혈, 사랑의 쌀 기부, 지역 자율 방범대에 매년 차량 1대 기증, 환경미화원에게 겨울마다 방한복 200벌 제공 등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미담을 전해 들은 지역의 한 주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동차 판매도 힘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자기 희생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제대로 된 기업가 정신을 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8일 오후11시14분께 ‘12층 에어컨 실외기에서 불이 났다’는 목격자의 최초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이후 불은 건물 외벽을 타고 고층부를 중심으로 급속히 번졌다./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9일 오전 울산 남구 달동 벤츠 딜러사 스타자동차 영업점에서 삼환아르누보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사진제공=스타자동차


9일 오전 울산 남구 달동 벤츠 딜러사 스타자동차 영업점에서 삼환아르누보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들이 ‘현장 지휘본부’를 운영하고 있다./사진제공=스타자동차


9일 오전 울산 남구 달동 벤츠 딜러사 스타자동차 영업점에서 삼환아르누보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사진제공=스타자동차


9일 오전 울산 남구 달동 벤츠 딜러사 스타자동차 영업점에서 삼환아르누보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사진제공=스타자동차


9일 오전 울산 남구 달동 벤츠 딜러사 스타자동차 영업점에서 삼환아르누보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사진제공=스타자동차


9일 오전 울산 남구 달동 벤츠 딜러사 스타자동차 영업점에서 삼환아르누보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사진제공=스타자동차


9일 오전 울산 남구 달동 벤츠 딜러사 스타자동차 영업점에서 삼환아르누보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사진제공=스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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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정세균 국무총리가 10일 강원도 삼척시 강원대 삼척캠퍼스에서 열린 강원 액화수소 규제자유특구 협약식에 참석하며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2020.10.10

srbae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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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
버스에 탔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연신 기침을 하고 침을 튀기며 떠든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코로나 악당', 이렇게 부르면 되지 않을까?

4~5년 전부터 대한민국은 해외에서 '기후 악당'이라고 불려왔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경제⋅산업 수준에 비해 온실가스 감축에 대단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우리나라는 꽤 잘살지만 책임은 회피한다. 일단 이런 태도에서 감점이다. 그런데 잘 사는 나라에게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모두 '악당'이라는 호칭을 붙이지는 않는다. '기후 얌체' 이 정도라면 모를까. 한국이 왜 '기후 악당'이라는 소리를 듣는지는 최근 정부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승인하고 국가 소유 지분이 51%인 국영기업 한국전력이 어떤 결정을 했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어쩌다 '기후 악당'이라는 말을 듣게 됐나.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빠른 온실가스 감축이다. 그리고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가장 효과가 크고 대체 가능한 건 바로 석탄화력발전소다. 석탄화력발전소 1곳이 1년 동안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다음과 같이 계산할 수 있다.

800g/kWh (단위당 배출량) x 1,000,000kW (발전소 용량) x 24 (하루 24시간) x 365 (일년 365일) x 0.85 (정비 기간 등을 감안한 연간 가동율) = 5,956,800,000,000그램이다. 톤으로 환산하면 5,956,800톤이다. 석탄화력발전소의 수명은 최소 25년을 잡는다. 따라서 석탄화력발전소 하나를 건설해서 수명대로 잘 가동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은 148,920,000톤에 이른다.

나무 한 그루가 정상적으로 잘 자라면서 광합성으로 흡수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대략 1년에 3kg 정도다. 그렇다면 과연 몇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석탄화력발전소 하나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를 상쇄시킬 수 있을까? 약 19억 8천560만 그루다. 반올림 살짝 해서 20억 그루 정도 된다. 그런데 석탄발전소를 하나 지을 때마다 나무 20억 그루를 심을 수 있을까? 그리고 심는다고 해서 나무가 문제없이 잘 자라서 석탄화력발전소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흡수 처리할 수 있을까?

올해만 해도 캘리포니아, 시베리아, 호주에서 대형 산불로 인해 몇 달 동안 엄청난 면적의 숲이 불타 버렸다. 나무들이 자라며 수십 년 간 흡수한 온실가스는 한순간에 공중으로 배출돼 버렸다. 나무가 아무 문제없이 잘 자란다고 해도 나무를 베어내 장작으로 쓰게 되면 또다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가구 소재 등으로 사용했더라도 가구로서 수명이 다해 폐기되어 태워져도 이산화탄소는 또 배출된다.

그런데 이렇게 계산을 하고 계산법을 설명하는 것도 별로 의미 없다. 어차피 석탄화력발전소를 한 개 만들 때 나무 20억 그루를 심으라는 규제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럽과 미국 일부 주에서는 기존 석탄화력발전소에 탄소세를 부과해 사회적 피해 유발 비용을 부과해 알아서 짓지 않게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영국, 캐나다를 포함한 34개 국가들은 10년 내 온실가스 50% 감축, 30년 내 100% 감축을 통한 인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석탄화력발전소를 2030년까지 모두 폐쇄하는 목표를 정하고 추진하고 있다.

다시 우리나라가 왜 '기후 악당'이라 불리는지를 설명해줄 한국전력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이렇듯 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탄소세를 부과하고 석탄발전소의 폐쇄를 추진하는 와중에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 발전소와 베트남 붕앙 2호 발전소까지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 지어지고 있는 7기의 발전소와 최근에 한전이 해외에 짓기로 한 발전소 3개를 합치면 총 10개의 석탄화력발전소가 한국 정부의 허가와 지원을 받고 추진되고 있는 셈이다. 이 발전소들이 25년 간 가동한다고 가정해 보면 매년 약 5천956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고 25년 간 총 14억 8천92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된다. 반올림해서 15억 톤이다. 대한민국 전체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약 7억 톤이다. 줄여도 시원찮을 마당에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시설을 짓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니 '기후 얌체' 정도가 아니라 '기후 악당'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도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을 가진 나라 중에서 이렇게 의욕적으로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는 나라는 현재 없다.

● 경제성은 있나? 석탄과 까워질수록 멀어지는 투자자들

여기서 한 가지 더 따져볼 게 있다. 이렇게 인류 생존 가능성을 악화시키는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이 과연 한전과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베트남 붕앙 2호 발전소의 경우 중국 중화전력공사(China Light & Power)가 소유하고 있던 40%의 지분을 한전이 2천200억 원의 비용을 내고 넘겨받으면서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중화전력공사는 왜 사업 지분을 넘기며 빠져나갔을까? 사업 지분 소유자만 빠져나간 게 아니다. 붕앙 2호 발전소의 석탄화력발전 기기를 공급하기로 한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도 빠져나갔다.

심지어 제너럴 일렉트릭은 지난 9월 21일, 신규석탄발전소 건설 사업을 완전히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러셀 스토크스 수석부사장은 신규 석탄화력발전사업 중단을 선언하며 제너럴 일렉트릭은 좀 더 경제성이 높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발전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신규석탄화력은 경제성 면에서도 성장 가능성 면에서도 불리하다는 얘기다.

제너럴 일렉트릭이 빠져나간 자리는 두산중공업과 삼성물산이 들어오기로 했다. 홍콩 및 일본 회사들이 미국 기업과 추진하다 포기한 사업을 한국 국영기업과 간판 대기업들이 맡게 된 것이다. 논란이 있는 해외석탄화력발전 사업을 승인하면서 정부 관계자는 개발도상국의 처지를 이해해줘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했다고 한다. 베트남이 경제 개발을 해야 하니 온실가스 배출이 좀 되더라도 싼 석탄발전소를 지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얼핏 들으면 온정적인 것 같지만 위험 요소가 많은 얘기다. 세계적인 흐름은 이미 석탄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는 중국도 206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0)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도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당선될 경우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유럽⋅중국⋅미국의 공조가 시작될 것이고, 이를 역행하기는 불가능해진다.

현실은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니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미사일로 폭파시키지는 않겠지만, 석탄발전소를 돌려서 만든 전기를 이용해 물건을 만드는 회사나 국가와는 거래를 끊거나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제재를 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23년에는 탄소 관세를 부과한다고 선언하고 추진 중이다. 미국 바이든 후보도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감축에 나설 수 있게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결국 석탄화력발전소를 완공한다고 해도 25년간 제대로 가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런 판단으로 많은 투자기관들이 석탄화력발전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 사실 한전이 해외는 물론 국내 석탄화력발전소를 만들거나 투자하는 것은 사업적인 면에서 적절치 않다며 만류하고 나선 투자기관들이 이미 여럿 있었다. 하지만 한전은 친환경적으로 만들겠다는 식으로 둘러대며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한전이 이런 기조를 바꾸지 않자 2017년도에는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한전을 투자금지 기업으로 지정했다. 같은 시기에 담배를 제조 판매하는 KT&G도 투자금지 기업으로 지정되었다. 2020년 2월에는 네덜란드 연기금 회사가 한전 지분 790억 원어치를 전량 매도한 바 있다. 지금도 여러 투자기관들이 한전의 행보를 보고 투자 철회를 결정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 한전의 베트남 붕앙 2호 발전소 투자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한전이 지난 10월 5일에 임시이사회를 열어 붕앙 2호 발전소 투자를 승인하자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COP26) 주최국인 영국의 고위 담당자인 존 머튼은 "왜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만들며 돈까지 손해 보려 하나?"라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COP26 관련 책임자인 니겔 토핑도 이번 (한전의) 결정은 "기후에도 나쁘며 (발전소가) 완공되어도 곧 좌초 자산이 될 것이고 한국 국민들의 세금을 낭비하고 관련된 모든 기관들의 평판에 먹칠을 할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외교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특정 국가기관의 결정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주한영국대사관에서 오랫동안 일해본 나로서도 이 정도의 돌직구 반응을 보고 좀 놀랐다.

하지만 이해는 간다. 우수한 제품을 만들고, 문화적으로도 영향력을 넓히고 있으며, 코로나도 유능하게 잘 대처하는 한국.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서는 소극적인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국이 왜 국제사회로부터 '기후 악당'이라 불리는지, 이제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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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류원혜 기자]

미국에서 1살짜리 딸이 뜨거운 차 안에 갇혀 죽어가는 중에도 새로 산 차가 부서진다는 이유로 창문을 깨고 딸 구조하는 것을 반대한 시드니 딜(27)./사진=라스베이거스 경찰국 캡처(왼쪽)


미국에서 1살짜리 딸이 뜨거운 차 안에 갇혀 죽어가는 중에도 새로 산 차가 부서진다는 이유로 창문을 깨고 딸을 구조하는 것을 반대한 아빠가 경찰에 체포됐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경찰은 아동 학대 및 아동 방치 혐의로 시드니 딜(27)을 지난 6일(현지시간) 체포해 구금했다.

시드니는 전날 오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한 거리에서 실수로 차 안에 열쇠를 놓고 차 문을 잠갔다. 이 때문에 함께 있던 생후 1년9개월 된 딸이 차 안에 갇혔다. 당시 라스베이거스 기온은 섭씨 35도에 달했다.

시드니는 이 사실을 알고 인근을 순찰하던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견인차와 열쇠공을 부른 뒤 시드니에게 우선 창문을 깨 딸부터 구조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시드니는 이를 거절했고 형에게 전화해 "차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차가 부서지면 수리할 돈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얼마 뒤 현장 경찰관이 아이의 안전을 우려해 시드니의 반대에도 창문을 깨고 차 안으로 진입했지만 딸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조사 결과 시드니는 경찰을 만나기 전에도 형에게 보험 정보를 요청하는 등 시간을 허비하며 골든 타임을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아이가 1시간 이상 뜨거운 차 안에 갇혀 고열에 시달리다가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아이의 시신에 대한 부검을 통해 명확한 사인을 조사할 방침이다. 시드니는 2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클라크 카운티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파워볼게임

류원혜 기자 hoopooh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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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중동전쟁 영웅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이스라엘 기습해 67년 6일전쟁의 치욕 씻어
77년 아랍권 첫 이스라엘 방문해 국회 연설
미 중재 이스라엘과 캠프데이비드 협정 맺어
시나이반도 돌려받고 아랍권 첫 국교정상화
재정난 속 빵 보조금 폐지로 폭동나자 결단
경제발전 위해선 과감한 평화전략 필요 판단
국익 위해 아랍권 비난과 외교적 수모 감수
국내 이슬람주의자 반발 속에 81년 암살당해
평화 위한 희생…민심 다독거리기 필요 보여줘
아랍권의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이 미국의 중재로 줄줄이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고 수교하면서 중동권에 새로운 화해 분위기가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41년 전인 1979년 아랍권 최초로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고 관계 정상화를 이끌었던 안와르 사다트(1918~81년, 재임 1970~81년) 이집트 대통령의 용기와 결단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1978년 백악관에 모인 메나헴 배긴 이스라엘 총리,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그리고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왼쪽부터).사진=위키피디아

전쟁영웅, 평화 위한 ‘퍼스트 펭귄’으로
이집트는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제1차 중동전쟁), 1956년 수에즈 동란(제2차 중동전쟁), 1967년 6일 전쟁(제3차 중동 전쟁), 1973년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 이집트에선 10월 전쟁)에서 이스라엘과 맞선 아랍권의 군사강국이다. 아랍민족주의의 이념을 따르는 과정에서 상당한 인적·물적 피해도 감수했다.
사다트는 아랍권이 아랍연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이스라엘과 단독 평화조약을 맺는 것에 반대하는 ‘반이스라엘 카르텔’을 과감하게 깨고 평화와 국익(시나이 반도 반환)을 추구했다. 페르시아 만(아라비아 만) 지역의 군주국가를 중심으로 아랍권에 이스라엘과 평화·협력 분위기가 새롭게 고조되는 가운데 중동평화의 ‘퍼스트 펭귄’인 사다트의 리더십을 반추해본다.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 사진=위키피디아

패배주의·외세간섭·경제난 세 마리 토끼
사다트는 이집트의 육군 장교로 자유장교단이 1952년 7월에 벌였던 쿠데타에 참가했다. 자유장교단은 이 쿠데타로 1807년부터 이집트를 통치하던 알바니아계 무함마드 알리 왕조의 파루크 1세를 축출하고 생후 5개월 된 그의 아들을 국왕(아흐마드 파우드 2세)에 올렸다. 자유장교단은 이듬해인 1953년 공화제를 채택하고 왕정을 폐지했다. 자유장교단의 고참 장교인 무함마드 나기브(1901~84년, 재임 1953~54년)가 초대 대통령에 올랐다.
이집트 역사상 2000여 년 만에 이 지역 출신이 지도자를 맡은 순간이었다. 이집트는 기원전 343년 페르시아가 고대 이집트의 제30왕조를 무너뜨리고 점령한 이래 2296년, 기원전 32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점령하고 그의 부하 장군인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리스계 파라오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창설한 이래 2285년 동안 외국, 외국인 군주, 외국 출신 군인의 지배를 받아왔다.
나기브는 곧 물러나고 자유장교단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가말 압델 나세르(1918~70년, 재임 1954~70년)가 대통령을 맡아 시리아와 통일아랍공화국(1958년 결성, 61년 시리아 탈퇴, 71년 폐지)을 이루는 등 아랍민족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나세르가 세상을 떠나면서 가까운 동료 사다트가 대통령에 올랐다. 사다트는 9년간 국회의장을 맡았으며 두 차례 부통령을 지냈다.
사다트는 1967년 6일 전쟁 패전으로 패배주의에 사로잡히고, 소련 군사고문단과 기술 전문가들의 간섭에 시달리고, 수에즈 운하가 막히면서 경제난까지 빠진 혼란의 나라를 물려받았다. 사다트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해법을 추구했다.

지난 10월 2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사다트 추모관 근처에서 주민들이 국기를 흔들며 1973년 이스라엘과 벌였던 10월전쟁(4차 중동전쟁 또는 욤 키푸르 전쟁의 이집트식 명칭))의 승리를 기념하는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유대 종교휴일에 이스라엘 기습해 성공
사다트는 가장 먼저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전쟁을 기획했다. 이를 위해 1972년 7월 소련 군사고문단과 전문가들을 내보내는 기만전술을 펼쳤다. 이는 처음엔 양국 관계의 악화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여겼지만 나중에 이스라엘을 안심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기만으로 확인됐다. 소련 군사고문단은 여전히 남아 이집트의 군사작전 수행을 도왔다.
그런 뒤 1973년 10월 6일~25일 아랍국가인 시리아와 손잡고 이스라엘을 상대로 욤 키푸르 전쟁을 벌였다. 유대인은 유대력으로 새해 열흘째인 욤 키푸르의 날에 속죄를 위해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예비군 소집을 통보하는 방송마저 쉰다. 유대인 종교휴일인 욤 키푸르의 날에 기습공격을 벌인 이집트 군은 수에즈 운하를 넘어 이스라엘 점령지인 시나이 반도 깊숙이 진군했다.
이집트는 긴급 출동한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를 소련제 지대공 미사일로 줄줄이 격추했으며, 그 막강하다는 이스라엘 기갑 부대를 격파하고 견고한 진지를 무너뜨렸다. 허를 찔린 이스라엘 군은 아리엘 샤론 장군이 이끄는 기갑사단을 동원해 역공을 펼쳤다. 샤론의 부대는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집트 수도 카이로 쪽으로 진격하는 기동작전을 펼쳤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범아랍권 산유국은 ‘석유 무기화’를 들고 나와 미국과 서방을 압박했다. 사다트는 군사적·외교적 성공을 모두 거뒀다. 결국 이스라엘이 미국을 통해 중재를 요청하자 이집트가 응하고 소련도 동의하면서 전쟁은 19일 만에 끝났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 기갑부대가 수에즈 운하를 가로지른 부교를 건너 이집트 본토로 향하고 있다. 당시 이집트군의 기습에 허를 찔려 항공과 기갑 전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한 이스라엘군은 필사적인 반격으로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간신히 휴전을 이룰 수 있었다. 적의 공격 징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정보 실패'가 전쟁 초기에 밀린 원인으로 분석된다. 사진=위키피디아
한풀이하고 전쟁영웅으로…경제난 계속
이집트는 1967년 6일 전쟁에서 그야말로 엿새 만에 시나이 반도를 잃고 수에즈 운하를 경계로 삼는 바람에 국가의 주요수입원인 운하가 막히는 고통을 겪었다. 욤 키푸르 전쟁, 또는 10월 전쟁은 이러한 이집트의 국가적 한이 한 순간에 풀린 전쟁이다. 사다트는 이집트에서는 물론 범아랍권의 영웅이 됐다. 아랍권을 수에즈 운하를 횡단해 군대를 이스라엘 점령지로 들여보낸 그를 ‘횡단의 영웅’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이집트 군도 이스라엘 군에 밀리기만 하는 오합지졸이 아니라 정밀한 작전을 펼쳐 이스라엘을 격파할 수 있는 현대 강군으로서 명예를 회복했다.
하지만 사다트는 욤 키푸르의 영광에 취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으로 엄청난 국가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현실을 직시했다. 아랍권과 이스라엘 분쟁의 종식만이 이집트의 경제발전을 가져올 수 있음을 절감한 사다트는 행동에 나섰다. 전 세계에 군사적 실력을 과시한 사다트는 눈을 서방으로 돌렸다. 강한 이집트를 목격한 미국도 자세를 바꿨다. 1967년 6일 전쟁 뒤 이스라엘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미국 외교관을 추방했던 이집트는 1974년 2월 미국과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1978년 미국 워싱턴에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왼쪽부터)와 손을 잡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냉전상황에 미국의 경제·외교적 지원 얻어내
사다트는 냉전 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할 줄 알았다. 모스크바에 평화와 경제발전 지원을 요청하면서 워싱턴에도 신호를 보냈다.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1913~94년, 재임 1969~74년)은 ‘평화를 위한 투자’라는 이름으로 이집트에 두 가지를 모두 지원하기로 했다.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도는 순방외교를 펼쳤다. 그 결과 1974년 1월 수에즈 운하 통제권을 이집트에 돌려주는 협정과 1975년 2월 시나이 반도의 일부 유전의 관리권을 반환하는 협정 등 두 차례의 시나이 협정을 맺었다. 결국 1975년 6월 수에즈 운하의 선박 통행이 1967년 6일 전쟁 이래 8년 만에 재개됐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이집트로서는 가뭄 끝에 단비와도 같은 조치였다. 총이 아닌 외교로 얻은 승리였다. 나세르의 이집트가 1973년 전쟁에서 군사력을 보여준 결과이기도 했다.
문제는 경제였다. 사다트는 수에즈 운하 재개에도 불구하고 재정난에 시달렸다. 결국 1977년 빵과 식료품을 비롯한 주요 생필품에 적용하던 보조금 철폐를 지시했다. 그러자 빈민을 중심으로 정부 조치에 항의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이 '식량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171명이 숨지는 유혈사태를 겪었다. 민심은 흔들렸고 상황이 다급해졌다. 전쟁영웅 사다트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웅의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카이로에 있는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 추모관. 사진=위키피디아.

재정난에 유전 눈독 리비아 침공하기도
사다트는 이웃 리비아의 유전에 눈독을 들였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에 대응하기 위해 이집트 동부 전선에 배치했던 군대를 7월 16일에 서부 전선으로 돌렸다. 1977년 7월 21일 이집트 군은 리비아 유전을 점령하기 위해 서쪽 국경을 넘어 리비아를 침공했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비난 속에 결국 나흘만인 24일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 국내 여론도 차가웠다. 이집트 땅인 시나이 반도를 점령 중인 이스라엘에 대응해야 할 군대를 빼서 서부 전선으로 돌린 사다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끓어올랐다.
사다트는 이런 상황 속에서 빼앗긴 영토 시나이 반도를 이스라엘로부터 돌려받을 방법을 고심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이 사다트의 결단을 불렀다.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이었다.
이집트를 비롯해 1945년 결성된 아랍연맹의 회원국들은 1967년 8월 카르툼 정상회의에서 어느 회원국도 이스라엘과 단독으로 평화 협상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사다트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선언적인 약속이 아니라 당장 이집트 국민에, 이집트 정부에, 자신의 권력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성과였다.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왼쪽)이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국민 보호 위해 지구 끝까지” 연설 뒤 적진행
사다트는 1977년 11월 9일 의회 연설에서 “이집트의 소년과 병사, 장교를 죽거나 다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다면 지구 끝까지 가겠다”며 “그들의 나라에 갈 준비가 돼 있고 크네세트(이스라엘 국회)에서 그들과 대화할 준비도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스라엘로 갈 준비를 하자 외교장관 이스마일 파흐미는 동행을 거부했으며 사다트가 귀국하자 사임했다. 효과가 없을 것이란 게 이유였다.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 민중의 적개심과 증오는 쉼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사다트는 카이로대 정치학 교수인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1922~2016년, 외교장관 재임 1977, 78~79년)를 외교장관 대행으로 임명하고 이스라엘 방문에 동행시켰다. 나중에 유엔사무총장(재임 1992~1996년)을 지내는 부트로스갈리는 콥트 기독교도이며 부인은 이집트 유대인이었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서로 생각 차이를 좁혀 이스라엘과 평화를 이루고 이를 통해 이집트의 국익을 도모하라는 것이었다.
사다트는 의회에서 한 자신의 발언을 열흘 만에 실행에 옮겼다. 11월 19일 사다트와 부트로스갈리를 비롯한 일행이 항공 편으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까지 가는 데는 45분도 걸리지 않았다. 마음은 멀었지만 지리적으로는 가까웠다. 사다트는 다음날인 11월 20일 크네세트에서 이스라엘 국회의원 앞에서 아랍어로 연설했다. 크네세트에서 연설한 첫 아랍 지도자였다. 유대 우파 정당인 리쿠드당의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1913~92년, 재임 1977~83년)가 앉아있었지만 사다트는 이스라엘 국민에게 직접 평화를 호소했다. 사다트는 이스라엘 국민에게 “평화를 위해 싸울 수 있도록 여러분의 지도부를 격려해달라”고 열변을 토했다.

1978년 미국을 방문한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오른쪽)이 조 바이든 미국 연방상원의원(왼쪽)을 만나고 있다. 당시 초선 연방상원의원이던 바이든은 상원 법사위원장과 외교위원장, 부통령을 거쳐 현재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다. 사진=위키피디아

이스라엘 국회 연설서 거북한 말도 거침없이
사다트의 연설은 쾌도난마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듣기 거북해 할 거북한 말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재를 외면하는 정치적 구호는 전 세계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평화를 위해선 팔레스타인 문제의 공정하고 지속적인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평화는 다른 나라 영토의 점령과 양립할 수 없다며 1967년 6월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모든 영토의 반환을 요구했다. 팔레스타인 몫인 동예루살렘의 반환도 언급했다. 종교적으로,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지극히 예민한 지역임에도 그는 서슴지 않고 이를 언급했다. 이 지역을 반환해야 아랍 국가들도 이스라엘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긴 이스라엘 총리도 지지 않았다. 그는 답례 연설에서 “우리와 이웃 간의 영구적인 국경에 관한 우리의 입장은 대통령 각하와 다르다”는 것이 그의 일갈이었다. 둘 다 원칙을 강조했다. 용호상박이었다. 하지만 협상에서 둘은 원칙을 약간씩 양보해 합의를 이뤘다.
결국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해선 아무런 양보도 하지 않았고, 이집트도 시나이 반도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원칙과 이익을 모두 주장하면 조만간 둘을 모두 잃게 된다”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협상이었다.


1978년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비교적 편안한 차림으로 평화 협상에 나선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왼쪽). 사진=위키피디아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노벨평화상 수상
사다트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 아래 이스라엘의 베긴 총리와 1978년 9월 17일 미국의 캠프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12일간에 걸쳐 끈질기게 협상했다. 그 결과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맺고 이를 백악관에서 조인했다. 아랍 국가 중 이집트가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외교와 경제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합의했다. 이집트는 1967년 빼앗겼던 시나이 반도를 총 한 방 쏘지 않고 되찾았다. 시나이 반도는 코로나 사태 직전까지 스쿠버 다이빙과 종교 순례지로서 숱한 관광객을 불러들인 이집트의 관광 달러박스 역할을 했다. 사다트 대통령은 이 공로로 78년 이스라엘의 베긴 총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두 나라는 1979년 워싱턴DC에서 평화조약을 맺고 국교를 정상화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협상을 중재해 1993년 오슬로 협정을 이끌어냈다. 이스라엘의 점령지인 요르단 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기로 합의한 협정이다. 이른바 2국가 체제다.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이스라엘을 승인하기로 했다. 이런 화해 분위기 속에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댄 요르단이 1994년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이런 외교 드라마는 한국의 성지 순례단이 이스라엘과 이집트 국경,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을 육로로 지날 수 있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2국가 체제는 실행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국제관계나 분쟁외교에서 협정과 실정이 다르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1981년 10월 10일에 열린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의 장례식. 사진=위키피디아

이스라엘과 평화에 불만 이슬람주의자에 암살
하지만 사다트는 아랍연맹에서 제재를 당하는 등 아랍권에서 수모를 당했다. 국내에선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반발을 샀다. 결국 1981년 10월 6일 욤 키푸르 전쟁을 기념하는 열병식 도중 무슬림형제단 소속의 이슬람주의자 군인들의 공격을 받고 숨졌다. 평화협정과 목숨을 바꾼 셈이다.

이집트를 방문한 미군 해군 고위 간부가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의 묘비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미국 해군
10월 10일 열린 사다트의 장례식에는 미국의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등 전임 대통령 3명이 동시에 참석했다. 이스라엘의 베긴 총리도 대규모 조문단을 이끌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집트 주요 인사와 중동권 지도자는 보이지 않았다. 오만, 수단 등에서만 조문을 왔다. '선지자는 고향에서 버림받는다'는 오랜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장례식이었다.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의 암살범이 재판을 받는 모습.사진=위키피디아

결단력 중요하고 바닥 민심도 다스려야
사다트의 삶과 죽음은 평화협상 과정에서 비전을 가진 지도자와 바닥 민심의 온도 차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지도자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민심을 추스르지 않으면 업적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사다트의 불행한 암살은 아랍권에 숨은 이슬람주의의 위험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의 암살과 연계된 이슬람주의 세력은 나중에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 세력과도 연결됐다. 평화협정 노력의 그늘 속에 예상하지 못한 독버섯이 자란 셈이다.
사다트의 노력은 역사에 선명한 족적을 남겼다.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아무리 악화해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외교·경제적 관계는 끈끈하게 유지되고 있다. 서로 실익이 있기 때문이다.
사다트는 이집트 카이로의 군사박물관에 묻혔다. 1973년 10월 전쟁 또는 욤 키푸르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시설이다. 북한이 일부 시설을 지었다. 그의 추모관이 함께 있다. 사다트는 잊혀가지만, 일단 군사력을 보여준 뒤 그 여세를 몰아 평화를 추구한 그의 업적은 여전히 빛난다. 국제사회는 그런 이집트를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엔트리파워볼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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