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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7-04 11:14 조회1,0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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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으로 했던 나는 해임” 호소하기도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의혹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겨냥, 해당 의혹을 최초 폭로한 청와대 특별감찰반 출신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친문(친 문재인 대통령)실세’들에게 잘 보여 출세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작심비판을 쏟아냈다. 김 전 수사관은 유 전 부시장에게 ‘빽’이 있었다고 재차 강조하며 “양심적으로 일한 난 해임까지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 3일 오후 ‘감찰 무마’ 의혹 사건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뉴시스
김 전 수사관은 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김미리) 심리로 열린 조 전 장관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전 “유 전 부시장 감찰 무마 당시 윤건영과 김경수 등 대통령의 측근들이 조 전 장관에게 청탁을 했다는 점이 공소장을 통해 확인됐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감찰 무마 의혹을 두고 “(조 전 장관이) 직권을 개인 소유물처럼 마음대로 휘두른 것”이라면서 “결재권·승인권이 있다고 해서 청탁을 받고 그 권한을 개인의 권한처럼 휘두르면 안 된다”고도 꼬집었다. 김 전 수사관은 지난해 2월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특감반장 등을 검찰에 고발한 인물이다.

조 전 장관은 해당 의혹과 관련해 특감반 감찰권이 당시 민정수석인 자신에게 있었으므로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김 전 수사관은 “특감반 감찰권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섰다. 이어 그는 “실무진이 고생해서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밝혀도 ‘빽’으로 무마시키니 특감반원들 사이에서 ‘고생해서 일해봤자 나쁜 놈은 빽으로 빠져나오고 오히려 우리가 혼나는데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의견이 팽배했다”고도 했다. 김 전 수사관은 “이번 일과 같은 폐해가 생기지 않도록 정의로운 판단을 내려주길 기대한다”고 말한 뒤 법정에 들어갔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의혹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에서도 김 전 수사관은 조 전 장관에 대해 “민정수석이면 (유 전 부시장 감찰 때와 같은) 빽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반대로 밀어낸다고 생각했다”고 비판했다. 조 전 장관 측은 그동안 유 전 부시장 감찰 당시 그가 감찰에 불응해 사실상 감찰이 중단된 상황이고, 아무런 조처를 할 수 없어서 감찰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해왔으나, 김 전 수사관은 “황당한 이야기”라면서 “감찰을 받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협조하지 않는 방법으로 감찰을 중단시킬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고위공직자에게 청와대 특감반은 어떤 존재냐’는 검찰의 질문엔 “속어로 말하면, ‘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날 법정에서는 조 전 장관과 방청객 간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휴정 도중 방청석의 한 남성이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조 전 장관 쪽으로 다가가 “국민이 다 보고 있어요, 안 부끄럽습니까”라고 하자 조 전 장관은 남성을 향해 큰 목소리로 “귀하의 자리로 돌아가세요”라고 외쳤다. 이어서 피고인 측 관계인이 나지막하게 비속어를 읊조렸고, 이 남성은 이에 항의하다가 법정 경위에 의해 제지됐다.


‘감찰 무마’ 의혹과 관련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에 출석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왼쪽)과 해당 의혹 폭로자이자 증인으로 나선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뉴스1
박 전 비서관의 변호인이 김 전 수사관이 검찰 조사 당시 했던 문 대통령 관련 증언을 거론하며 특감반이 유 전 국장 외에도 사직서를 받는 것으로 감찰을 마무리한 사례가 있지 않았느냐고 추궁했으나, 김 전 수사관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했다. 문 대통령은 유 전 부시장 감찰이 아닌 다른 보고서에 ‘수고했다, 왜 사직서만 받고 수사의뢰는 하지 않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재판 말미에 김 전 수사관은 유 전 부시장 사건과 비교해 자신은 부당한 처분을 받았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전 수사관은 특감반 재직 시절 사업가들과 정보제공자들로부터 부정한 골프 접대를 받은 혐의 등으로 검찰에서 해임됐다.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재판도 받고 있다. 그는 “착한 사람, ‘범생이’를 만나서는 정보가 안 나온다”며 “악당을 만나야 어떤 사람이 나쁜 놈인지 말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외근 활동이기에 양심적으로 했고, 그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었다”면서 “누구는 먹고 살지도 못하게 가혹하게 해임까지 한 것 보면 (유 전 부시장과) 너무나도 비교된다”고 호소했다

취재원 가명·익명 처리 고심…"홍콩 독립" 표현 별도 기호 처리
"보안법 신축적 적용 우려"…일부 외국인 기자들 '탈 홍콩' 검토



보안법 통과 반발하는 홍콩 시위대(홍콩 AP=연합뉴스) 홍콩 시위대가 지난 6월30일 센트럴 지구의 한 쇼핑몰에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의 홍콩보안법 통과 처리에 항의하고 있다. jsmoon@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 중국 정부가 홍콩 국가안보처 수장에 강경파를 임명하는 등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에 박차를 가하면서 언론의 자유에 제약이 커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현지 언론들은 취재원들이 인터뷰를 사양해 가명과 익명처리를 고심해야하고, '홍콩 독립' 관련 구호를 보도하면 기소될 수 있는지 긴급자문을 받으면서 일부 구호는 별표로 처리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홍콩이 오랜기간 누려온 언론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박탈당하는 상황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보안법 조항이 워낙 광범위해, 고무줄같이 적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보안법 항의 시위대에 물대포 발사하는 홍콩 경찰(홍콩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경찰이 지난 1일 주권 반환 23주년을 맞아 거리로 나선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항의 시위대에 물대포를 발사하며 해산을 시도하고 있다. jsmoon@yna.co.kr


언론서 '홍콩 독립' 표현 자취감춰…"가명·익명 요구 커져"


홍콩 민주화 시위를 취재해온 일부 외국 프리랜서 기자들은 홍콩을 떠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홍콩에 본부를 둔 언론기관들은 이제 금지된 '홍콩 독립'과 관련한 구호를 단순히 인용하거나 보도사진을 찍어도 기소가 가능한지 긴급 자문했다.

홍콩 정부의 압박을 받아온 공영방송 RTHK는 이날 트위터에 금지된 구호와 관련한 기사를 소개하면서 '해방'(liberate)이라는 단어를 별표로 처리했다.

톰 그룬디 영자지 홍콩자유언론 편집장은 웹사이트에서 매체의 생존과 취재원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조처를 하고 있다.

그는 "체포를 하거나 직접적인 검열을 하기보다는 우리의 자원을 고갈시키기 위한 법적이고, 관료주의적 테러를 경험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우려했다.

이 회사는 외국 독자들로부터 기부를 받거나 해외에 백업용 조직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룬디는 일부 취재원이 인터뷰를 사양하고 있어 가명과 관련한 현재 가이드라인을 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칼럼을 익명으로 내달라는 요청은 거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파워볼게임

기자들은 법적 우려가 있는 일부 기사에 대해 간부의 이름을 바이라인(필자이름)으로 다는 게 허용되며, 이미 암호화된 기기와 애플리케이션을 쓰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룬디는 "우리는 그 외에는 새로운 윤리 규범과 국제적 기준을 지킬 것"이라며 "공공장소에서 찍은 사진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취재원을 밝히거나 기사를 쓰는 데 있어 지금까지와 다르게 행동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국의 자료제공 요청에 저항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기자들도 비상…변호사들, SNS계정·대화 내용 삭제


언론인들은 채팅방에서 VPN(가상사설망) 등 네트워크 보안기능과 플랫폼 암호화를 강화하고 해외 라디오 방송국과 안전하게 인터뷰를 하는 방법 등을 공유하고 있다.

한 언론인은 "미지의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아무도 홍콩보안법이 얼마나 신축적으로 적용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홍콩 외신기자클럽은 홍콩보안법이 언론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와 관련해 긴급히 조언을 구하고 있다. 홍콩보안법 54조에 따르면 홍콩 당국은 외국 뉴스통신사의 운영과 서비스 강화를 위한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변호사들도 홍콩보안법의 시행에 대해 극도로 우려하면서 적응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홍콩 인권 변호사는 그의 동료들이 국제 언론사나 비정부기구(NGO)에 발언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조항들이 워낙 광범위해서 홍콩보안법과 관련한 피고 측 변호사에 대해 비밀유지특권이 여전히 존재하는지 대대적인 우려가 있다"면서 "보안법 관련 범죄에 대해 누구나 경찰에 정보를 제공하게 돼 있기 때문에 변호사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VPN이나 암호화된 이메일 등 보호조처를 취하고 있고, 많은 변호사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과 대화 기록을 지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라며 "변호사들은 단순히 고객을 변론하는 것만으로 체포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 항구의 '국가보안법' 옹호 대형 간판(홍콩 EPA=연합뉴스) 홍콩 반환 23주년인 1일 빅토리아 항구의 한 바지선에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가결을 축하하는 내용의 대형 간판이 실려 있다. 논란이 큰 홍콩보안법은 이날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sungok@yna.co.kr
(세종=연합뉴스) 김연정 정수연 기자 = 3일 국회를 통과한 35조1천억원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축된 내수·수출·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재원이 포함됐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도약을 위한 '한국판 뉴딜' 사업의 추진 재원은 정부안보다 3천억원 삭감된 4조8천억원으로 편성됐다.

◇ 8대 할인소비쿠폰 제공·온누리상품권 1조 추가 발행

정부는 3차 추경을 통해 확보한 5천억원으로 8대 할인소비쿠폰을 제공하고 온누리상품권을 추가 발행하며 고효율 가전할인을 확대하는 등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경기 침체 완화를 위한 소비 진작에 나선다.

우선 농수산물, 관광, 숙박, 영화, 공연, 전시, 외식, 체육 등 8대 소비쿠폰 제공을 위해 1천684억원을 쓴다.

소비쿠폰은 온·오프라인 상품·서비스 구매자에게 선착순으로 지급한다. 전 국민의 31%인 약 1천618만명이 혜택을 본다.

정부는 온누리상품권 발행 규모를 기존 3조원에서 1조원 더 확대한다.

지역사랑상품권은 6조원에서 9조원으로 3조원 더 늘린다.

가전제품 소비 확대를 위해서는 구매액의 10%를 30만원 한도에서 환급해주는 '고효율 가전 환급' 대상 품목에 의류건조기를 추가하고, 관련 예산을 1천500억원 늘린다.

연합뉴스
소비쿠폰 풀고 카드공제 늘리고…내수 회복 총력전 (CG)
[연합뉴스TV 제공]



◇ 인플루엔자 무상접종 456만명 확대

중·고교생과 60대 초반 연령대의 국민 총 456만명이 인플루엔자 무상접종을 받게 된다. 이를 위해 예산 489억원을 3차 추경에 포함했다.

당초 정부는 만 14~18세 중·고교생 235만명에게 265억원을 들여 무상접종을 하려 했으나, 국회 심사를 거치며 만 62∼64세가 추가돼 대상 인원이 확대됐다.

보호구 772만개 등 방역 물품을 비축하기 위한 예산도 3차 추경에 반영됐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마스크 5천만장 추가 비축을 위해 350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늘렸다. 음압병상은 120병상을 더 늘린다.

정부는 재난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목적예비비를 1조1천600원 확충했다.

◇ 유턴기업 전용 보조금 신설…수출 회복 위해 무역금융 확충

정부는 투자를 살리기 위해 200억원을 투입해 유턴기업 전용 보조금을 신설해 첨단산업이나 R&D(연구·개발) 센터를 수도권에 두는 기업에 지원한다.

코로나19로 휘청이는 수출의 회복을 위해 '36조원+α(알파)' 규모의 무역금융도 확충한다.

긴급한 안전 보강이 필요한 노후 터널, 철도, 건널목, 하천 등 SOC(사회간접자본) 투자에도 재정을 투입한다.

지방교부세 감액 정산으로 어려워진 지방재정의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조1천억원으로 지방채 인수를 지원한다.

코로나19로 폐업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의 재기를 위해 점포철거비, 창업 교육 등을 추가로 지원하고,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기술우수중소기업에 대한 보증을 강화하기 위한 예산도 3차 추경에 반영됐다.

연합뉴스
내일부터 무급휴직 긴급지원…최대 150만원 지급 (CG)
[연합뉴스TV 제공]



◇ 고용유지지원금 '90% 지급' 기간 4~9월로 석달 늘려

정부는 고용 유지, 생활 안정, 직접 일자리 공급, 실직자 지원 등 고용안정 특별대책 이행 지원을 위한 9조1천억원의 예산을 3차 추경에 포함했다. 총 321만명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우선 경영난에 빠진 기업이 감원 대신 휴업·휴직으로 고용을 유지할 때 지급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87만명에게 지급하고, 특수고용직 종사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무급휴직자에게 1인당 150만원을 주는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114만명에게 지급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유급휴업·휴직에 들어간 기업에 대해 휴업·휴직수당의 90%까지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지급하는 특례 기간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부안(4~6월)보다 석 달 늘어난 4~9월로 확정됐다. 이를 위해 5천억원을 추가 배정했다.

구직급여 지급 대상은 49만명 더 확대됐다.

청년·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매입·전세임대주택은 당초 정부안보다 1천500호 늘린 2천800호를 공급하고, 만 34세 이하·연소득 3천500만원 이하 취업준비생이나 중소기업 1년 이하 재직자가 쓸 수 있는 햇살론유스(youth)를 기존 1천억원에서 2천억원으로 늘린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등록금 반환·감면 대학에 대해서는 실질적 자구노력을 통해 등록금 반환, 장학금 등을 지원한 대학에 한해 비대면 교육, 교육환경 개선 목적의 예산을 총 1천억원 한도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한국판 뉴딜 (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 '한국판 뉴딜' 4.8조 투입 첫발…전국 초중고에 와이파이

3차 추경에는 디지털 뉴딜, 그린뉴딜, 고용안전망 강화에 연내 총 4조8천억원을 투입하는 내용도 담겼다.

정부는 빅데이터 플랫폼을 15개로 늘리고 14만개의 공공데이터를 순차적으로 개방해 민간 기업의 연구·개발을 돕는다. 또 5G 국가망을 시범 실시하고 인공지능 분야 인재를 양성한다.

농어촌 1천300곳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고 공공장소 WiFi 1만개를 설치한다.

정부는 또 7천500억원을 투입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전국 초·중·고교에 원격교육 인프라를 확충하고 중소기업의 원격근무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도시와 산업단지를 디지털화하는 예산은 4천500억원이 담겼다. 주요 간선도로와 철도에 디지털 안전관리체계를 만들고 재난 대응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노후 공공건축물 1만1천호를 리모델링하고 생활형 SOC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사업에는 4천억원이 투입된다.

녹색 기업 육성을 위한 정부 융자 지원 등에 3천500억원을 쓴다.

정부는 또 기후변화에 대비해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 분야에는 4천700억원을 투입한다. 스마트미터기 40만호를 교체하고 태양광·풍력·LNG발전소 등 지능형 통합운영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다.

이밖에 2022년까지 경유 화물차와 어린이 통학차량 총 15만대를 친환경차로 바꾸고 5만5천대 규모의 전기 이륜차 구매를 보조한다. 노후 관공선도 조기 교체한다.

고용안전망 확충에는 1조원을 투입한다.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지급하고, 청년 인턴지원과 청·장년층 신산업 분야 취업을 돕는다.

#1
본인이 난곡을 희망하지는 않았다. 교구 소속 사제들의 인사는 교구장의 전권이니 그가 난곡동 성당 주임신부로 발령 난 것은 김수환 추기경의 뜻이었다. 강우일은 1985년 8월 15일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난곡동 성당 3대 주임 신부로 부임했다. 1974년 사제가 된 이후 명동 성당과 중림동 성당의 보좌 신부 생활을 짧게 한 것을 제외하면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비서, 서울대교구 교육국장, 홍보국장 등으로 일했다. 난곡은 그의 사제로서 첫 본당이었다.

난곡은 서울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 당시 난곡에 있는 초등학교는 특수지 학교로 분류됐다. 특수지 학교는 근무 여건이 열악한 곳에 있는 학교를 말하는데 교사들은 이런 학교에서 근무하면 가점을 받아 다음 인사에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주로 산간 오지, 섬에 있는 학교나 분교가 해당되었는데 난곡에 있는 학교는 이 특수지 학교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학교로 분류되었다. 서울 시내에 있지만 난곡은, 우리 사회 빈곤의 오지였다. 2001년 4월 중앙일보 <난곡 리포트>는 당시 난곡을 이렇게 묘사한다.

"산꼭대기의 파란색 공동화장실. 소방차가 올라갈 수 없는 평균 경사 35도의 골목길. 주로 소주·라면만 팔리는 동네 가게. 옛 삼성전자 로고가 남아 있는 1970년대식 거리 간판. 아직도 두 집에 한 집 꼴로 연탄을 쓰는 곳"파워사다리


01년도 당시의 서울 신림동 난곡 지역 (사진=연합뉴스)

강우일이 난곡에 간 것은 그때로부터도 16년 전이었으니 당시 난곡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빈곤의 현장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갈등과 모순이 가난이라는 형태로 난곡에 모여 있었다. 난곡은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악다구니를 치는 사람들로 늘 시끄러웠고 매일 곡 소리가 났고 어디선가 싸움이 벌어졌다. 누군가는 피를 흘렸고 누군가는 핏대를 올렸고 누군가는 쓸쓸하게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세상을 등졌다. 난곡을 관할하는 당시 서울 남부 경찰서의 사건 처리건수는 서울 시내에서 언제나 일등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나눔과 유대와 인정이 있었지만, 펄펄 끓는 삶의 현장이었기에 한 편의 지옥도 같은 풍경이 수시로 펼쳐졌다. 그런 난곡 생활이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힘들지 않았습니다. 거기 신자들과 함께 기쁘게 동네를 다녔습니다. 힘들다고 느낀 적 없습니다."


강우일 주교와의 인터뷰는 6월 30일 제주교구장 집무실에서 있었다. 그의 글만큼이나 말에도 거의 수식어가 없었다.

조금은 힘들 때도 있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으려는데 샤를르 드 푸코 신부 이야기를 꺼냈다. 샤를르 드 푸코 신부는 북부 아프리카 등에서 원주민의 마을에 들어가 그들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그리스도의 믿음을 말이 아닌 몸으로 실천했던 사람이다. 그를 본받아 이 세상 밑바닥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과 살면서 믿음을 증거하려는 수도회가 <예수의 작은 형제회>다.

"로마 우르바노 대학원을 마치고 사제 서품을 받기 전에 푸코 신부님의 영성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 1년 동안 <예수의 작은 형제회> 수사들과 북아프리카 원주민 마을, 스페인 빈민가, 일본의 공장 지역에서 그 사회 가장 밑바닥 사람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삶이 낯설거나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해서 좋았단다. 그런 이야기를 마치 남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했다. 그의 글만큼이나 말에도 수식어가 거의 없었다. 그의 모든 것에 절제가 배어있었다.

이 후리후리한 젊은 신부 때문에 가슴 설렌 처자들 한두 명 아니었을 테고 신부하기 아까운 인물이라고 수군대는 소리 난곡 곳곳에 넘쳐났을 것이다. 할머니 신자들이 아들뻘 되는 신부님 손잡고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집애들은 다 꼬리 아홉 달린 여우라고만 생각하세요.' 난곡의 청년들은 이 사제를 통해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성당 문 앞을 기웃거렸을 테고 이 더러운 놈의 세상 이래 사나 저래 사나 한 가지라며 자포자기하던 사람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그가 내미는 손 어색하게 맞잡았을 것이다.


강우일 주교/강정마을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예수 흉내 제대로 내며 살아보겠다는 그의 야심 찬 도전은 불과 넉 달 보름 만에 끝이 났다. 그의 선택은 아니었다. 로마 교황청은 1986년 1월 4일 그를 주교로 승격시켜 서울 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했다. 본당 주임 신부는 임기가 5년이다. 적어도 5년은 이곳에서 여기 사람들과 같은 밥 먹고 같은 옷 입고 같은 냄새 풍기며 살겠다고 생각했던 강우일에게 주교 승격은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교황청 대사에게 나는 그런 자리를 감당할 사람이 못 된다고 사양했어요. 그랬더니 그런 이야기는 김수환 추기경께 말하라는 겁니다. 김 추기경님께 '저는 주교 재목이 못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어이 강 신부, 저기 십자가 위에 예수님 보고 못하겠다고 그래'라고 하시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죠."

강우일의 후임 신부도 1986년 2월에 부임했다가 6개월 만에 해외 유학이 결정돼 난곡을 떠났다. 난곡 사람들은 불과 1년 만에 두 명의 사제가 임기 중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우리들은 죽어서나 벗어날 수 있는 난곡을 저 사람들은 쉽게도 오고 쉽게도 떠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물었더니, "그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겠네요."라고 역시 밋밋하게 대답했다.

이 대목에서 2009년 그가 쓴 김수환 추기경 추도사의 일부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추기경님은 젊은 시절부터 간직하신 한 가지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복음을 말로써 가르치는 것보다 그들 곁에서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사시는 것이었습니다. 주교직에 오르고 추기경 직에 오르시며 그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당신 영혼의 밑바닥에서 누구보다도 당신 자신에게 큰 빚을 지고 사셨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난곡은 그에게 오랫동안 마음의 빚이었다. 불과 5개월도 안 되는 본당 사제 생활이었지만 난곡동성당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교류는 수십년 동안 계속 이어졌다.

#2
2012년 부친 강영욱의 장례 미사 때 그의 강론은 사뭇 감동적이다. 강우일은 차분하고 담담하게 아버지의 일생을 회고한다. 슬픔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슬픔을 넘어선 듯한 목소리다.
강영욱은 일제시대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공무원과 군인을 거쳐 연탄공장, 냉동 수산업 등 다양한 사업을 했는데 부침이 심했다. 한국에서 39년, 일본에서 32년, 미국에서 20년을 살았고 평생 32번 이사를 다녔다니 강영욱의 삶은 순례자의 삶이었다.

부친의 사업이 부침이 있긴 했지만 강우일의 집안은 그 시대 평범한 일반인의 집안은 아니었다. 그의 할아버지 강세현은 경남 합천의 대지주였고 외할아버지 오위영은 신탁은행장, 3선 의원을 지낸 정계의 거물이었다. 강우일이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오위영은 장면 내각의 장관이었다. 게다가 그의 이모 오현주가 1959년도 미스코리아 진이었다. 이래저래 그의 집안은 유명세 꽤나 타는 집안이었다.

강우일이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63년 강우일 집안은 일본으로 이민을 갔다. 그의 나이 18살 때였다. 아버지 냉동 수산업이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직격탄을 맞은 데다가 새로 들어선 군부 정권이 사사건건 방해를 하는 바람에 한국에서 도저히 살 형편이 안돼 일본으로 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본에서 대학 진학을 준비하다가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신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예수회가 설립한 일본 조치(上智) 대학에 입학했다. 이 대학을 나온 김수환 추기경과는 동문이다. 그의 선택은 4대째 천주교 신앙을 지켜온 집안의 장자 다운 선택이기도 했다.



#3
그의 삶의 전반부는 드라마틱 한 출세 스토리지만 후반부는 고배의 연속이다. 30살에 신부가 되어서 41살에 주교가 되었다. 이문희 대주교가 37살, 정진석 추기경이 39살에 주교가 된 예가 있지만 어쨌든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1998년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 대교구장에서 30년 만에 물러났을 때 가장 유력한 후임은 강우일이었다. 서울대교구에서 주교로 16년 일했고 김수환 추기경이 가장 신임하고 후원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로마 교황청의 결정은 예상과는 달랐다. 정진석 당시 청주 교구장이 후임 서울대교구장이 되었다.

2001년 강우일이 서울대교구 2인자인 총대리로 임명되자 사람들은 차기 교구장 승계 작업이 시작됐다고 해석했다. 71세 고령으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정진석 추기경의 뒤를 잇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교황의 선택은 달랐다. 서울 대교구 총대리로 임명된 지 1년도 안 된 2002년 8월 강우일은 제주교구장으로 발령이 났다.

"놀라긴 놀랐죠. 실망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제주 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꿈에도 그런 생각은 안 했으니까요. 당시 정진석 교구장님과 생각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계속 일해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서울대교구장 인사에서 거듭 물을 먹었으니 내색은 안 했지만 아팠을 것이다. 왜 내가 제주로 가야 되느냐고 묻고 싶었을 텐데 그는 순명했다. 그것으로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교황청에서 추기경 서임을 발표할 때마다 유력 후보로 그의 이름이 거명되었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준비위원장으로 일하면서 그의 추기경 서임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지만 신임 추기경 명단에 그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그의 성향이 비슷하게 보여 그런 가능성을 더욱 높게 본 것일 텐데 결과적으로 허망한 기대였다. 강우일의 자리처럼 보였던 서울대교구장과 추기경의 자리는 한때 서울 교구 사무처장으로 그의 밑에서 일하던 염수정이 차지했다.

#4
일찍 주교가 되었지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감이 컸던 것은 아니다. 초대 가톨릭대 총장을 할 때 이름이 좀 알려졌을까. 정의구현사제단에 가입한 적도 없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도 드물었다.



"(제주 오기 전에는) 그런 사회적 발언 안 했습니다. 우선 제가 보좌 주교라 적극적으로 나설 처지가 아니었구요.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님들이 주장하는 기본 취지에는 동의했지만 독재 권력과 싸우는 과정에서 이쪽 편도 그들을 닮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분들의 저항의 방법론이 제가 기쁘게 동참하는 것을 어렵게 했습니다."

명동성당에서 20년 넘게 지내면서 그의 표현을 빌리면 '오만가지 꼴을 다 봤고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그가 겪은 오만가지 꼴과 별의별 일에는 경찰과 안기부, 보안사로 상징되는 독재권력의 행태도 있었지만 정의와 양심의 깃발만 들면 무슨 일을 해도 좋다는 오만과 독선도 있었다는 말로 들렸다. 그것이 그를 꽤 힘들게 했던 모양이다.

그 시절 사회적 발언을 자제한 이유는 또 있었다.

"제가 평생 닮고자 했던 샤를르 드 푸코 신부님이 그랬던 것처럼 저는 입이 아니라 몸으로 주님의 삶을 증거하고 싶었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는 것, 그것은 제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저 아니어도 말할 사람은 많았던 시절이기도 했구요."

제주도로 간 이후 그는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작은 자들의 주교로서 작은 자들의 입장에서 작은 자들의 이해를 대변했다. 자기가 돌봐야 할 양 떼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그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타협하지도 양보하지도 않았다.

4대강 사업을 위해 전국의 산과 강을 파헤칠 때 '도둑질'이라고 거칠게 몰아세웠고 제주도에 제2공항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편의를 위해 왜 우리가 그 땅에서 쫓겨나야 하느냐며 공항 건설은 '무덤을 파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진보 정권이 나서 제주 강정 마을에 군사 기지를 지으려고 할 때는 왜 당신들의 평화를 위해 우리들의 삶이 위협받아야 되느냐고 따졌다.


사회적 발언은 내 몫도 아니고 내게 맞는 일도 아니라고 말하던 그가 제주도에 와서 왜 달라진 것일까. 무엇이 그의 굳게 닫힌 입을 열게 만들었을까.

"제주 4.3 사건입니다. 육지에 있을 때는 그저 그런 일이 있었구나 싶었는데 여기 와서 공부를 해보니 너무 끔찍하더라고요. 유대인을 집단 학살한 홀로코스트에 비해 규모는 작을지 모르지만 국가에 의한 범죄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사죄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차분했고 목소리가 올라가지도 않았고 여전히 밋밋했다. 그래도 이 부분을 이야기할 때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졌다.

"강정 마을에 해군기지 짓는다고 할 때 4.3 당시 그 참혹한 일을 저지른 군대가, 군홧발 소리 요란하게 울리며 다시 제주를 짓밟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때 나마저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 역사 속에서 그때 교회는 무엇을 했느냐는 말을 들을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제주도에서 안식처를 구하는 예멘 난민 사건이 불거졌을 때 그는 우리가 이거 밖에 안 되느냐고 통탄하며 난민들에게 잘 곳을 제공하고 먹을 것을 주었다. 2014년 헌법재판소가 8:1로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을 때 불관용과 억압과 단죄와 처단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어둠의 시대라고 헌재 결정을 신랄히 비난했다. 두 사건 모두 다수 여론은 난민 추방과 헌재 결정이 잘 된 것이라는 쪽이었지만 그는 신앙인의 양심으로 외롭고 힘든 자들의 편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개발에 따른 이윤은 결국 가진 자들의 차지가 될 것인데 왜 우리가 가진 자들을 위해 피해를 감수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다수를 위해 소수는 참아야 한다거나, 한 사람이 희생해서 아흔아홉 명이 행복하다면 한 명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그의 이름이 필요한 곳에는 그의 이름을, 그의 지위가 필요한 곳에는 그의 지위를 빌려주었고 그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했다. 어려운 사람들이 성당으로 찾아오기 전에 먼저 그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갔고 때로는 싸움의 현장에 나가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제주에서 삶은 2천 년 전 나자렛 예수의 격렬한 삶을 연상시킨다. 4대강 사업을 도둑질이라고 대성일갈하는 것은 나의 아버지 집은 돈 버는 곳이 아니라며 성전의 좌판을 때려 엎던 모습 같고, 제2공항 건설은 무덤을 파는 짓이라는 경고는 예수가 채찍을 들어 휘두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당시 지식인들과 성직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 회칠한 무덤이라고 외치던 예수의 모습은, 사람이 죽어 나가든 말든 나 몰라라 하면서 조용히 기도만 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팔아먹고사는 직업인에 불과하다고 매섭게 몰아붙이는 그의 모습과 닮아있다.

"제가 명동성당 그 최루탄 연기 속 먼지 구덩이 속에서 20년 넘게 살았잖아요. 제주 발령 났을 때 놀라기는 했지만 하느님이 이제 아름다운 제주에 가서 편안하게 살라고 포상 휴가 주셨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 아니더라고요. 여기는 더 심한 전쟁터더라고요. 서울에서는 생각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전쟁터였습니다. 요즘 들어서야 이래서 하느님이 나를 제주로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5
그의 말이 수시로 교회의 울타리를 넘고 제주도를 넘어 육지로 들려왔다. 김수환 추기경의 뒤를 이어 서울 대교구장이 된 정진석, 염수정 두 추기경이 사회적 의제에 대한 발언을 꺼리거나 의례적인 수준의 발언에 그치면 그칠수록 그 역할은 강우일에게 떠맡겨졌다.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말을 떠밀려서 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 역시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크게 울리는 것은 아닌지 부담을 느끼는 기색도 없지 않았다.

"제 기질이 나서길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사하라 사막에서 숨어살 듯 살았던 샤를르 드 푸코 신부님 삶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분처럼 살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몸이 아닌 입으로 많은 것을 떠드는 것은 제가 바라던 것이 아닌데 제주에 살고 주교회의 의장을 맡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보수 정권 시절 그는 언론의 단골손님이었다. 제주라는 작은 섬에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제주에 머무르지 않았다. 언론이 그를 집중적으로 소환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역시 사회를 향해 발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주교 서품을 받았으면 자신의 교구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향해 외쳐야 될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가장 작은 교구의 책임자인 그가 한국 천주교회 얼굴처럼 비쳤고, 7만 명의 신자를 가진 교구의 주교인 그가 5백만 명이 넘는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자로 보였다. 주교회의 의장이라는 직책 때문이었을 텐데 때로는 그의 발언의 무게와 그의 자리의 크기가 균형이 맞지 않는 듯했다. 한국천주교회 최고 의결 기구인 주교회의의 의장은 무기명 비밀 투표, 이른바 교황 선거 방식으로 선출되어 주교단을 대표하지만 다른 주교들의 상급자는 아니고 한국 천주교회 대표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그의 목소리가 자주, 크게 울리면 울릴수록 그에 대한 불만과 비난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교회 안에서 주교 회의의 권위를 그가 독차지하는 것 아니냐, 그가 주교 회의의 이름을 사회적 발언에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심지어는 그를 종북 사제, 붉은 사탄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억압받는 사람들은 힘들 때 천주교회를 쳐다봤다. 거기에서 위안을 얻고 힘을 구하고 때로는 거기에서 잠시 쉬어 가기를 원했다. 70-80년대 김수환 추기경이 있던 천주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교회가 손 내밀어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교회의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민주화의 성지라고 불리던 명동성당에서 농성자들이 쫓겨나기도 했고 그들이 내미는 구원의 손길을 교회가 외면하는 일이 적잖이 벌어졌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 시절, 정의와 불의가 너무도 분명하던 시절 천주교회가 불의한 세력에 저항하던 사람들을 껴안는 것은 당연한 의무였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선과 악이 다투는 시절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라는 서로 다른 가치가 부딪히는 상황이라는 것, 보수와 진보는 생각의 차이일 뿐 어느 한 쪽이 완전히 배제되고 어느 한 쪽이 정의를 독차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오로지 진보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도 교회 안에 존재한다.



이에 대한 그의 입장은 확고하다. 정의가 세워지지 않고 거짓과 악이 판칠 때 그때 침묵하는 사제는 양 떼를 지켜야 하는 목자가 짖지 못하는 개와 같다는 7세기 교황의 말까지 인용하며 사제들의 사회적 발언과 비판 나아가 저항을 촉구한다.

"오늘 누가 가난한 사람들이고 누가 잡혀간 사람들이며 누가 억압받고 있고 누가 앞을 못 보고 갇혀 있는지 관심이 없다면 작은 공동체 안에서 우리끼리 사랑한다고 외쳐봐야 예수의 진실한 사랑이 아니다" <2014년 성탄 전야미사>

#6
2009년 겨울 김수환 추기경 장례식은 우리 시대 거인의 이름에 걸맞는 장엄한 의식이었다. 그 의식의 정점에 강우일의 추도사가 있었다. 그의 추도사는 알아듣기 쉬웠다. 한 사람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써도 되나 싶은 단어가 곳곳에서 동원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표현.

"추기경님을 흠모하는 팬들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추기경 정도 되는 분을 이 정도로 족치신다면"
"주님,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추기경님 이제 좀 편히 쉬게 해주십시오."

불경스럽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 말이지만 강우일은 자신 있게 이런 말을 썼다. 고인과의 절대적 신뢰와 애정이 없었다면 이런 표현 쓰지 못한다. 추도사는 마치 아들이 아버지 간병하듯 그가 김수환 추기경의 상태를 매일매일 챙기고 있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소박한 민초들의 언어로 투병 중에 보인 김수환 추기경의 인간적 모습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배변만큼은 당신의 힘으로 하고 싶었으나 그 마지막 자존심마저 포기해야 했다는 구절은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와 조금도 다를 것 없는 작은 인간이었음을 환기시켰고 온 국민은 다시 한번 깊이 김수환의 삶에 공감할 수 있었다.

추도사의 백미는 "많이 아껴주셨던 강우일이 인사 올립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다. 이 한 문장으로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얼마나 각별한 관계였는지, 인간이 나눌 수 있는 애정과 믿음이 얼마나 깊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죽음이 갈라 놓은 이별 앞에서 헤어짐의 아픔을 이렇게 담담하게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두 분이 약주라도 한 잔 하시면 김 추기경께서 '어이 우일이, 아니면 야 강우일' 이렇게 부르기도 했던 거 아닌가요?"

그렇게 부르고 그렇게 불리는 관계였으니 강우일이 그 엄숙하고 모든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된 자리에서 그런 표현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가볍게 웃으면서 아니라고 답했다.

"저를 아들같이 대하신 것은 맞는데 교회에서는 품을 받으면 존칭을 씁니다. 그렇게 막 부르시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 추도사를 통해 온 국민이 애도하는 국민적 장례식의 실질적 맏상주가 다른 사람이 아닌 강우일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는 말의 힘을 잘 아는 사람이다.

#7
그가 말의 힘을 아는 사람이라는 또 하나의 예는 교종이라는 단어의 사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교회 수장을 교황이라고 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집스럽게 교종이라는 단어를 쓴다. 교종이란 말은 예전에도 썼던 말이고 교회의 으뜸이란 뜻이니 크게 틀린 말도 아니지만 말은 어 다르고 아 다른 법이다. 교회의 황제라는 뜻과 교회의 으뜸이라는 말은 어감부터 확연히 다르다. 강우일은 신임 주교들에게 이런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교회가 오래되고 덩치가 커지면서 관행과 관례가 생겼다. 교회는 지혜도 생겼지만 고집도 세졌다. 초대교회에는 사제도 없고 주교도 없었다. 오직 형제와 벗이라는 말을 썼을 뿐이다. 지금의 교회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 모습을 교회의 본질인 양 오해하고 곡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의 잘못된 겉칠을 벗겨내는 작업을 여러분들이 해야 한다."
<유경촌 이한택 주교 서임 축하 모임>

그가 말하는 교회의 <잘못된 겉칠>에는 전제적 군주 같은 교황의 존재도 포함되는 것은 아닐까.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만들어진 최초의 공동체 지도자가 지금의 교황 같은 모습은 아니라고,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구조의 현 교회 제도가 교회의 본질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이런 말을 할 때 그의 생각은 막 잡아 올린 생선의 날비늘처럼 싱싱하다. 시퍼렇게 날이 살아있는 칼 같다. 일흔다섯 노인네의 생각이 이렇게 말랑말랑하고 유연하고 급진적일 수 있을까.

천주교회는 일반인들의 눈에는 베일에 싸인 조직이다. 비밀이 많고 가리워진 게 많다. 그래서 음모론이 끊이질 않는다. 35년 동안 주교로 있으면서 베일 속의 권력 게임을 치르기도 하고 때로는 지켜봤을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이런 것을 물어도 되나 싶어 조심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는 어떤 질문도 거부하지 않았고 능구렁이처럼 답을 피하지도 않았다. 답이 길지 않고 상세하지 않은 것은 몸에 밴 절제 때문이거나 질문이 무뎠기 때문일 것이다.

2017년 정권 교체 이후 그의 사회적 발언은 줄어든 반면 깊이는 훨씬 깊어졌다. 그는 최근 심각하게 국가란 무엇이냐고 묻는다. 국가를 위해 개인이 죽어야 하고 국가를 위해 개인의 권리를 양보해야 한다면 그런 국가가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 국가를 신화화하고 우상화하는 시도가 일본이나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고 우리나라도 그런 조짐이 없지 않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국가가 그리도 신성하고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것인지 비판하고 의심하자고 말한다.

위대한 조국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강우일의 이런 생각은 위험천만하고 불온하게 보일 수 있다. 공동체의 근본 원리를 위협하고 부정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으나 그에게 한 인간의 생명과 권리는 그만큼 소중하다. 그런 점에서 강우일은 역시 래디컬 하다.

#8
염수정 추기경 서임 축하식에서 강우일은 이렇게 말했다.

"되도록 지위 높고 힘 있는 사람들은 덜 만나고 이름 없고 기댈 데 없는 사람들 많이 만나시라.

2010년 인천 교구 신임 주교 축하식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

"주교가 되면 신부일 때와는 달리 몇 십 가지가 달라진다. 입는 옷부터 달라지고 비서가 생기고 기사도 붙는다. 그러다 보면 교만해지기 십상이다. 당연히 자신은 예수 진영에 속해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마귀 진영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천국에는 주교들이 백 년에 겨우 한 명만 들어간다는 농담이 있는 것이다. 25년 주교 생활한 사람의 덕담이다."

이 두 가지 사례를 들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염 추기경이라면 주교님 조언이 상급자의 훈계처럼 들렸을 거 같습니다."

"염 추기경님과는 서울대교구에서 같이 일하기도 해서 그렇게 서먹한 관계는 아닙니다. 그 정도 이야기는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한 이야깁니다만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었을 거 같습니다….제가 교만한 데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느님 앞에서 제가 제일 고백하고 속죄하는 부분도 저의 오만함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이 말을 하는데 분위기가 잠시 숙연해졌다. 급히 화제를 돌려 정년 이야기를 물었다. 올해 10월이면 만 75살, 교회법에 따르면 올해 정년이다. 빠르면 올 연말 늦어도 내년이면 은퇴를 한다. 은퇴 후의 계획을 물었더니 조용히 살고 싶단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들어주면서 조용히 제주에서 살고 싶단다. 그가 없는 제주를 벌써부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은퇴 이후에도 제주에 근거지를 둘 것이란 말은 그들에게 반가운 소식이겠다. 지금처럼 버스를 타고 어려운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찾는 온유한 사제의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취재에 도움을 주고 귀한 사진 제공해 준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님과 사진작가 송동효 선생님에게 감사드린다.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죽으면 책임질게'라고 한 택시기사…"미필적 고의나 부작위에 의한 살인도 적용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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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환자의 아들이 지난 1일 유튜브에 '응급환자가 있는 구급차를 막아 세운 택시 기사'라는 제목의 영상.


응급환자를 이송하던 구급차와 사고가 난 택시기사가 차량 이동을 막아 응급 환자 이송이 지체돼 사망한 사건을 두고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3일 현재18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따르면 지난달 8일 오후 폐암환자인 청원인의 어머니가 통증이 심해 응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가던 중 택시와 접촉사고가 있었다. 응급환자 이송 중임을 호소했으나 택시기사는 믿지 않고 별도로 119 구급차를 불러 환자를 옮길 것을 요구했다.

결국 택시기사 주장대로 119 구급차가 온 뒤 응급실로 이송했으니 몇 시간 뒤 환자는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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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구급차 운행을 방해한 유사 사건에선 업무방해죄 처벌이나 과태료 정도가 가능하다. 하지만 법률전문가들은 환자가 사망에 이른 사건에 있어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나 부작위에 의한 살인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운용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는 "택시기사가 '죽으면 책임질게'라고 얘기한 것을 보면 진료가 늦어져서 사망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과 용인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그런 경우라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필우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도 "택시기사가 구급차를 막아선 것은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행위를 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며 "사망이라는 결과에 구급차를 막은 행위가 어느 정도의 인과관계가 있는지가 문제되겠지만 행위자체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세월호 선장 이준석씨에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최초로 인정한 바 있다.동행복권파워볼

형사사건 처리가 '살인죄'로 기소될 지는 경찰 수사와 이어지는 검찰의 기소 판단에 좌우되겠지만, 유가족 입장에선 위자료를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할 수 도 있다. 이필우 변호사는 "택시기사의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상당액의 위자료도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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